[2025.10.12.] [전문인칼럼] 낡은 지도가 품은 보물 '원도심 골목길' 이상호 대전사회혁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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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대전사회혁신센터장 |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는 늘 동무들과 뛰어놀던 골목길이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그 길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이웃 간의 소소한 정이 오가던 따뜻한 공동체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시의 현대화로 인한 팽창과 재개발 속에서 수많은 원도심 골목길은 사라지거나 잊혀졌다. 효율과 속도만이 미덕이 된 시대에 골목길은 '낙후된 공간'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단언컨대, 원도심 골목길이야말로 현대 도시가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고 공동체 문화를 담아내며,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중요한 열쇠라고 믿는다. 특히 도시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응축된 원도심 골목길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품은 보물창고와도 같다.
최근 대전사회혁신센터가 추진하는 '도시산책' 프로젝트는 이러한 원도심 골목길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대전시민과 함께 도시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매우 고무적인 시도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물리적 환경 개선에만 초점을 맞추는 기존의 도시재생 방식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이야기'와 '사람'을 중심으로 골목길의 가치를 재정의하는 데 있다. 오래된 건물 하나, 낡은 간판 하나에도 세월 흔적의 역사가 깃들어 있고, 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도시산책'은 바로 이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하고, 스토리텔링을 통해 원도심 골목길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성공적인 원도심 골목상권 활성화의 출발점은 그 공간이 지닌 고유의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을 매력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 있다. 센터의 '도시산책' 프로젝트는 본질적 맥락을 명확히 식별하고 단순히 오래된 골목을 걷는 행위를 넘어, 그곳에 얽힌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건축물의 비밀, 혹은 수십 년째 한자리를 지키는 노포의 애환 같은 무형의 가치들을 콘텐츠화한다. 이는 원도심 골목길을 공간과 공간을 잇는 단순한 통로가 아닌, 이야기가 있는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방문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재방문을 유도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일례로 특정 골목길에 숨겨진 예술가들의 작업실이나 갤러리를 묶어 '예술가의 길'이라는 테마를 부여하거나 대를 이어온 맛집들을 연결해 '미식 투어' 코스를 개발하는 식이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아날로그 감성을 찾아 떠나는 '출사 여행', 원도심의 다양한 감성 공간을 담아낸 '원도심 골목길 가이드북' 제작 아이디어는 모두 이러한 스토리텔링 기반의 접근법을 보여준다. 이는 방문객이 골목길을 단순한 소비 공간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특별한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상상해 보라. 스마트폰 대신 직접 지도를 들고 친구들과 함께 원도심 골목길의 숨은 벽화나 오래된 간판을 찾아다니는 모습. 혹은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함께 옛이야기를 들으며 인생 선배들의 삶의 지혜를 공감하는 모습을 이러한 경험은 개인의 추억을 넘어, 도시 전체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여기에 시민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해지면서 원도심 골목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이 담긴 '이야기 공간'으로 끊임없이 진화한다. 실제로 GPS를 연동한 '스마트 골목여행 앱'이나 노포의 역사를 담은 책자 제작은 시민들의 아이디어가 구체적인 결과물로 이어진 훌륭한 사례이다. 이처럼 시민의 참여는 원도심 골목길에 활력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궁극적으로 도시산책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가치는 단순한 관광 활성화를 넘어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느림의 미학'과 '아날로그적 감성',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관계'를 원도심 골목길에서 되찾고자 하는 것이다. 골목길은 사람들의 삶이 녹아들어 공동체가 형성되고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는 복합적인 공간이다.
물론 원도심 골목상권 활성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본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대규모 상업 공간에 맞서려면 골목길만의 독특한 매력과 진정성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도시산책과 같은 프로젝트는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의 꾸준한 관심과 참여를 바탕으로 골목길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확산되는 '커뮤니티 기반의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대전사회혁신센터의 '도시산책'은 바로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혁신적 시도이다. 원도심의 잠재력을 깨우고, 시민과 함께 도시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대전의 원도심 골목길이 다시금 생명력 넘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그곳에서 우리 모두가 잃어버렸던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낡은 지도 속에 펼쳐진 우리들의 기억 속 원도심 골목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그 골목길을 따라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담고 싶을까? /이상호 대전사회혁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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